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마다, 창가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문득 궁금해진다. 조선시대에도 나처럼 동물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강아지와 산책을 나서던 양반, 새벽녘에 고양이와 함께 서책을 읽던 선비, 연못 속 금붕어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왕.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조선에도 애완동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동물들과 함께했으며, 그들에게 애완동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시대 속으로 조용히 발을 들여보자.
왕실과 양반들의 애완동물 –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 혹은 조용한 벗
조선의 왕실과 양반들에게 동물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어떤 동물은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였고, 어떤 동물은 조용한 동반자였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은 인간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
개(犬) – 충직한 친구, 때로는 왕의 벗
나는 강아지를 키운다.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고, 힘든 날에는 조용히 옆에 앉아 나를 위로해 준다. 조선의 왕들과 양반들에게도 개는 그런 존재였을까?
조선 왕실에서 개는 충직함의 상징이었다. 영조(英祖)는 개를 무척 아꼈던 왕이었다. 그는 여러 마리의 개를 길렀고, 개가 죽었을 때 묘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개는 왕에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벗이자 가족이었던 것이다.
양반들도 개를 길렀다. 하지만 개를 키우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개는 집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사냥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나는 상상해 본다. 저녁이면 마당에서 개를 쓰다듬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던 양반의 모습을. 그 개는 주인을 지켜주는 동시에, 조용한 위로를 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고양이 - 쥐를 잡는 존재, 혹은 고요한 동반자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선의 선비들도 그랬을까?
조선에서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한 동물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실용적인 존재만은 아니었다. 선비들은 서재에 고양이를 두었고, 그들은 조용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조선 후기 문인 윤선도는 자신의 시에서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묘사했다. 그에게 고양이는 책을 읽는 동안 곁을 지키는 조용한 벗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때때로 미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귀신을 쫓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나는 상상해 본다. 고양이가 창가에서 조용히 앉아 달빛을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그 앞에서 선비가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장면을. 그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로의 존재였을 것이다.
새(鳥) –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꿈
양반들은 새를 길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자유를 꿈꾸었을 테니까.
특히 학(鶴)은 선비들의 상징이었다. 그림 속에서 학은 고고한 존재로 등장했으며, 양반들은 새장을 만들어 작은 새들을 길렀다. 앵무새는 말을 따라 하는 능력 때문에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답답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어쩌면 새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자유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민들의 애완동물 – 작은 존재에게서 찾은 행복
양반들이 개와 고양이, 새를 길렀다면, 서민들은 조금 다른 동물들과 함께했다. 그들에게 동물은 삶의 일부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 닭과 오리 – 친구가 되어 준 가축들
나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닭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닭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그 닭을 ‘순이’라고 불렀고, 마치 가족처럼 대했다.
조선시대의 서민들에게도 닭과 오리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닭을 키우며 정을 붙였고, 때로는 닭에게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오리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선의 아이들도 나처럼 닭과 함께 뛰어놀았을까?
- 족제비와 다람쥐 – 예상치 못한 반려동물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는 족제비와 다람쥐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다람쥐는 작은 손으로 먹이를 쥐고 갉아먹었고, 족제비는 민첩하게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다.
나는 상상해 본다. 아이가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며 까르르 웃는 모습, 족제비가 재빠르게 달려가며 집 안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조선에서도 사람들은 작은 동물들에게서 행복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결론 – 시대를 넘어, 인간과 동물의 교감
나는 오늘도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문득 조선시대의 누군가도 이렇게 개와 함께 걸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돌리던 선비, 금붕어가 노니는 연못을 보며 미소 짓던 왕, 닭에게 이름을 붙이며 소중히 여기던 아이. 그들의 감정은 오늘날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대는 변하지 않는다. 조선에서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