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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주교 : 전래, 탄압, 백성들의 마음

by a-historical 2025. 3. 9.

나는 역사를 공부하며 가끔 상상해 본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양반 가문의 자제였을까,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을까, 혹은 억압받는 노비였을까. 하지만 만약 내가 조선 후기,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태어났다면, 또 다른 선택이 내 앞에 있었을 것이다. 바로, 천주교를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당시 조선은 유교 사회였다. 왕은 하늘이 아니라 ‘성리학적 윤리’를 따라 다스렸고, 사람들은 조상을 섬기며 신분제 속에서 살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서양에서 온 새로운 신앙이 전해졌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오직 하느님만이 진정한 왕이다.” 이 말은 조선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어떤 이는 이를 받아들이고 목숨을 걸었고, 어떤 이는 이를 탄압하며 두려워했다.

천주교는 조선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박해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이어졌을까? 그 안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감정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천주교 성당의 모습

천주교의 전래 – 새로운 믿음이 조선에 스며들다

천주교는 처음부터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으며 들어온 종교가 아니었다. 사실 조선 후기 학자들은 서양 문물을 연구하면서 천주교를 만났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청나라를 통해 서양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그 안에는 천문학과 수학 같은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종교는 ‘천주교(가톨릭)’라고 불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천주교는 단순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바꿀 신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조 시대의 실학자들이 있었다.

이승훈. 그는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인물이었다. 청나라에 가서 직접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같은 남인 학자들이 천주교를 연구하고 받아들이면서 신앙은 점점 퍼져 나갔다.

처음에 천주교는 단순히 ‘새로운 철학’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기존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조선의 양반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천주교 탄압 – 믿음이 죄가 된 시대

천주교 신자들은 조선의 기존 질서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조상을 제사 지내지 않았다. 조선에서 조상 제사는 단순한 가정 의식이 아니라,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를 거부했다. “조상보다 하느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조선 사회는 이를 패륜으로 보았다.

그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천주교에서는 양반이든 노비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다. 양반은 상민과 다른 존재여야 했고, 노비는 평생 노비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양반과 천민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조선의 지배층에게 이는 신분제를 흔드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렇게 천주교는 점점 탄압받기 시작했다.

1801년 신유박해.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왕 순조가 즉위했다. 새로운 권력을 쥔 노론 세력은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정약종은 참형을 당했고,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천주교 탄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병인박해 때는 8천 명이 넘는 신자들이 학살당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죽이며 기도하던 사람들은, 결국 목숨을 잃어야 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과 이별하고, 피비린내 나는 형장에서 목숨을 잃을 용기가 있었을까?

백성들의 마음 – 왜 그들은 천주교를 선택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들은 그토록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조선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종교가 있었다. 불교도 있었고, 무속신앙도 있었고, 유교도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천주교를 받아들였을까?

 

  • 희망이 필요했다.

조선 후기, 백성들은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신분제는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런데 천주교는 말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말이었다.

 

  • 사랑과 연대.

천주교 신자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다. 양반과 천민이 함께 기도했고,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신앙을 나누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따뜻한 공동체였다.

 

  • 죽음 이후의 삶.

조선의 백성들은 내세를 꿈꾸기 어려웠다. 유교는 현실의 윤리를 강조했고, 불교는 일부 계층에서만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이 땅에서 고통받더라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이 기다린다.”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천주교가 탄압 속에서도 계속 퍼져 나간 이유였다.

결론 – 조선의 신앙과 우리의 현재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만약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모두가 강요하는 유교적 삶을 따라갔을까? 아니면 몰래 성경을 읽고, 어둠 속에서 기도했을까? 혹은 무서워서 신앙을 버리고, 탄압하는 쪽에 섰을까?

조선 후기, 천주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고,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 뒤에는, 그런 희생과 신념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