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한반도는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웠고, 외국어를 사용해야 할 이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구나 영어를 배우듯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누구는 필사적으로 배워야 했고, 누구는 선택적으로 배웠으며,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익혔습니다. 조선 시대에 사용된 외국어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조선의 외국어를 배우던 이들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배웠는지, 어디에서 가르쳤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찾아보니 조선 시대에도 외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한문 – 조선의 공식 외국어
조선 시대의 외국어 1순위는 단연 한문이었습니다. 사실 ‘외국어’라고 하기엔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한문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학문과 권력을 상징하는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문은 중국에서 온 외국어였고, 조선에서 한문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배운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한문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주로 양반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문을 배우지 않으면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고, 벼슬길에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을 외우고, 붓글씨를 연습하며 한문을 익혔습니다. 한문은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조선 사회에서 신분과 직결된 언어였습니다.
한문을 가르치던 대표적인 기관은 성균관이었습니다.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 최고 교육기관으로, 학문을 연마하고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유생들은 한문을 배우고, 시를 짓고,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또, 왕과 대신들이 나누는 공식 문서와 외교문서도 모두 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문을 모른다면 조선 사회에서 ‘배운 사람’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조선인이 한문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민과 여성들은 한문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고,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일부 기녀들은 시를 짓고 글을 쓰기 위해 한문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황진이 같은 기녀는 한문 시를 남겼습니다.
몽골어 – 사신과 역관들이 배운 언어
조선 초기에는 몽골어도 중요한 외국어였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원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몽골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조선 초기까지도 몽골과의 외교에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몽골어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몽골어를 배우던 사람들은 주로 사신(使臣)과 역관(譯官)이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북방의 여진족과 몽골 계통의 부족들과도 외교를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조선 정부는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역원(司譯院)이라는 기관을 운영했습니다.
사역원에서는 한문뿐만 아니라 몽골어, 여진어, 일본어 같은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몽골어는 조선 중기 이후 중요성이 떨어졌고, 결국 여진어와 일본어가 더 중요한 외국어가 되었습니다.
여진어 – 국경을 지키기 위한 필수 언어
조선 시대에 국경을 맞대고 있던 여진족과의 소통을 위해 여진어(만주어의 전신)를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진족은 조선과 무역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선 정부는 여진족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역관들을 양성해야 했습니다.
여진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문이나 몽골어는 기존에 학습 방법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지만, 여진어는 문자 체계도 달랐고, 체계적인 교재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정부는 직접 여진족을 잡아다가 통역을 시키거나, 여진족 출신 사람들을 역관으로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사역원에서는 여진어를 배우는 과정이 있었고, 실제로 여진족과 접촉하는 변경 지역에서도 여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진족이 점점 강성해져 후금(나중의 청나라)을 세우면서, 여진어는 만주어로 발전하였고, 결국 한문이 다시 중요한 외교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일본어 – 대마도와의 교류를 위한 필수 언어
조선과 일본은 끊임없이 교류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과의 외교를 담당해야 했고, 조선 후기로 가면서 통신사도 파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를 배우던 사람들은 주로 부산의 왜관(倭館)에서 활동하는 역관들이었습니다.
왜관은 일본과의 교역과 외교를 위해 설치된 특별한 구역이었습니다. 부산포, 염포, 제포 등에서 일본 상인들과 조선 상인들이 만났고,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선의 역관들은 일본어를 배워야 했으며, 일본과의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일본식 한자(和漢)를 읽고 쓸 줄도 알아야 했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로 갈수록,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재정립되었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외국어 교육의 특징
조선 시대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직업적 필요성과 연결된 일이었습니다.
한문은 조선의 공식 언어이자 지식인들의 필수 언어였습니다.
몽골어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중요했지만 점점 쇠퇴했습니다.
여진어는 변경 지역에서 필요했으며, 여진족과의 외교를 위해 배웠습니다.
일본어는 왜관에서 활동하는 상인과 외교관들이 반드시 익혀야 했습니다.
이제 조선 시대에도 외국어를 배우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는 어떤 외국어를 배우고 있었을까요? 성균관에서 한문을 배우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왜관에서 일본어를 익히고 있었을까요? 시대가 변해도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항상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조선 시대 사람들도 살아남기 위해 외국어를 배웠습니다. 이 사실이 저는 정말 흥미롭습니다.